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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차완료/내가 좋아하는 글

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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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개 때문에 한 가지 불상사가 일어났다.

나는 그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게 되었다.

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.

한데 바니니아만은 예외였다.

도통 관심이 없었다.

그 애는 아무 이유 없이도 늘 행복한 아이였다.

흑인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행복해하는 걸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.

나는 항상 개를 품에 안고 다녔는데 그때껏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고 있었다.

'타잔'이나 '조로' 같은 게 생각나기도 했지만, 어딘가에 아무도 갖지 않았던 좋은 이름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.

결국 나는 '쉬페르(super)' 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, 언제든지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르면 바꿔 줄 생각이었다.

나는 나의 내부에 넘칠 듯 쌓여가고 있던 그 무언가를 쉬페르에게 쏟아부었다.

그 녀석이 없었더라면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.

그때는 정말 위기 상황이었다.

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콩밥 먹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.

녀석을 산책시킬 때면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.

왜냐하면 녀석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였으니까.

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다.

그때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,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.

뭐 누구를 모욕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로자 아줌마의 집은 아무리 익숙해진다 해도 역시  우울 한 곳이었다.

그래서 쉬페르가 감정적으로 내게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,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졌다.

가능하다면 나 자신이 살고 싶었던 그런 삶을.

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, 녀석이 보통 개가 아니라 푸들이었다는 점이다.

하루는 어떤 부인이 쉬페르를 보더니 "아이구, 그 개 참 예쁘기도 해라!"라며, 개가 내 것인지, 그리고 자기에게 팔 의향이 없는지 물었다.

내 옷차림이 꾀죄죄하고 생김새도 프랑스 사람 같지 않으니까 그녀는 녀석이 특별한 종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.

 

나는 오백 프랑을 받고 쉬페르를 그녀에게 넘겼는데, 그것은 정말 잘 받은 가격이었다.

처음에는 그 마음씨 좋아 보이는 부인이 정말 돈 많은 집 부인인지 확인해보려고 오백 프랑을 불렀다. 

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.

그녀에겐 운전기사가 딸린 차까지 있었다.

그녀는 내 부모가 나타나 소란이라도 피울까봐 그러는지 쉬페르를 얼른 차에 태우고 가버렸다.

내가 이 말을 하면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, 나는 그 오백 프랑을 접어서 하수구에 처넣어버렸다.

그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송아지처럼 울었다.

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.

로자 아줌마 집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였다.

돈 한푼 없는 늙고 병든 아줌마와 함께 사는 우리는 언제 빈민구제소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처지였다.

그러니 개에게도 안전하지 못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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